극적인 공간을 만드는 디테일s/식물

탐스러운 꽃과 신비로운 덩굴가지로 풍요로운 봄 향기를 전하는 고전적 소재 '등나무'

magicalelf 2024. 4. 1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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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을 지나고 있습니다. 운전하며 마을길을 지나고 있는데, 어떤 돌집 대문 옆으로 탐스럽게 등나무가 피어있는 거죠. 너무나 황홀한 풍경이었습니다. 제주에서는 4월 초에 개화하기 시작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는 5월 초여름을 상징하는 꽃이지요. 
 
로맨틱하며 따뜻하며 화려한 라일락색의 등나무는 서양에서도 오랫동안 인기를 얻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가 사랑한 그의 공간 '지베르니(Giverny)'가 떠오릅니다. 

클로드 모네(Oscar-Claud Monet)의 지베르니 집과 정원의 아치형 다리에 식재된 등나무 [출처] https://www.thecollector.com/

 
 
그의 공간과 정원에 대한 구첸적인 이야기는 앞선 포스팅을 참고 바랍니다. 
2024.03.01 - [예술가의 공간] -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의 집과 정원에 대하여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의 집과 정원에 대하여

꽃과 정원, 건축과 인테리어, 그림과 조형예술...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일하고 공부하는 분야입니다. 그런 저에게 '공간탐닉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은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수많은 생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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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등나무는 이야기가 있는 식물입니다. 대학교의 실험 온실 주변에는 여름의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오래된 등나무 퍼골라(pergola)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삼겹살과 막걸리파티를 하기도 했는데, 등나무 풍경을 볼 때마다 그때 친구들과 시끌벅적 재잘거리던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조경 디자인을 하던 충주의 현장 구석, 정말 오래되어 허리를 굽혀 작은 아치입구로 진입해야 했던 등나무는 점심시간 나만의 낮잠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등나무의 달콤한 향기로 인해 가끔 벌떼들이 괴롭히기도 있지만, 등나무는 시원한 그늘과 아늑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아름다운 나무였습니다. 그렇게 등나무는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줄뿐더러 사람들의 곁에서 오랫동안 역사를 함께 나누어 온 추억의 식물이기도 합니다. 딱 좋은 계절, 소담한 풍경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등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볼게요.

 

 
 

등나무(Wisteria) 

Wisteria는 정확히는 콩과의 등속식물을 이야기합니다. 이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나무는 일본원산의 등나무 플로리분다(Wisteria floribunda D.C)입니다. Wisteria속 식물은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캐나다 남부, 미국동부, 이란 북부 등 다양한 곳을 원산지로 하고 있습니다. 이후 1800년대 초반, 프랑스, 독일 및 유럽의 다양한 국가에 소개되었고, 현재까지 매우 인기를 얻고 있는 덩굴성 수목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빠른 생장 등의 이유로 다른 토종 식물 종을 따라잡거나 잠식시킬 수 있기에, 미국에서는 침입종으로 간주한다고 하네요.
 
등나무는 덩굴성 식물이기에 지지대가 있으면 좋습니다. 가지가 얽혀가며 성장하는 형태인데, 전 세계적으로 흔한 품종인 일본 등나무(Wisteria floribunda D.C)와 중국 등나무(Wisteria sinensis)는 각각 꼬이는 방향이 시계방향과 시계반대방향으로 다르다고 하네요. 재미있습니다. 크기는 지상 20m까지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꽃은 흰색, 연보라색, 보라색, 분홍색 등 다양하며, 매우 향기가 좋습니다. 개화시기는 품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봄에서 늦여름까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등나무(Wisteria속)는 1818년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식물학자인 토마스 너탈(Tomas Nuttall)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이름은 미국의 의사이자 해부학자인 카스파 위스타(Caspar Wistar)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큐(Kew) 왕립식물원에서 발행한 POWO(Plant of World Online)에서 허용한 등나무는 2024년 현재 4종이 있으며,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1.Wisteria brachybotrys Siebold & Zucc.일본원산 / 2.Wisteria floribunda DC. 일본원산 / 3.Wisteria frutescens (L.) Poir 미국원산 / 4, Wisteria sinensis DC. 중국원산 [출처] https://en.wikipedia.org/

 
 
등나무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후 개발된 원예종은 그 꽃의 컬러와 모양이 다양한데, 핑크색 꽃의 Wisteria floribunda 'Rosea' , 노란색 꽃의 Yellow Wisteria sinensis, 파란색 꽃의 Wisteria Macrostachya 'Blue Moon' 등이 있습니다. 

1. Wisteria floribunda 'Rosea' [출처] https://www.ornamental-trees.co.uk/ / 2. Yellow Wisteria sinensis [출처] https://www.amazon.com/ / 3. Wisteria Macrostachya 'Blue Moon' [출처] https://www.plantingtr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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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들이 사랑한 등나무(Wisteria)  

클로드 모네(Claude-Monet) 1840~1926의 <지베르니(Giverny) 집과 정원에 심겨있는 등나무>

위에 이야기했듯 클로드 모네(Claude-Monet)는 애정하는 그의 집과 정원에 등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풍경은 그의 그림에도 남아있는데요. 그의 풍경화는 미묘한 빛의 변화를 통한 미학을 이해하기 위한 그의 노력과 절실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점을 달리하여 한 곳의 풍경을 여러 번 화폭에 담았고, 등나무를 그린 작품 또한 5점 이상 남아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그의 등나무 연작 중 하나입니다. 

Claude Monet. Wisteria, 1917 -1920

 
 

스탠리 스펜서(Stanley Spencer) 1891~1959 가 묘사한 <영국주택의 풍경 속 등나무>

영국출신의 화가인 스탠리 스펜서(Stanley Spencer) 1891~1959은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러 장면을 묘사하였습니다. 적벽돌로 마감된 영국식 건물 앞에는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연보라색의 등나무가 탐스럽게 꽃을 틔우고 있습니다. 등나무를 비롯하여 무늬사철나무, 칠엽수 등으로 보이는 주변의 식재들로 하여금 당시 영국 주택정원의 풍경과 등나무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1.Stanley Spencer Wisteria at Englefield, 1954&amp;nbsp; / 2. Stanley Spencer, Wisteria. Cookham, 1942

 
 

앙리 장 기욤 마틴(Henri-Jean Guillaume "Henri" Martin) 1860~1943이 표현한 <프랑스의 회벽 담장과 등나무>

프랑스 출신의 화가인 앙리 장 기욤 마틴(Henri-Jean Guillaume "Henri" Martin) 1860~1943 또한 프랑스의 주택 담장을 타고 올라가 핑크색 빛으로 반짝이는 등나무를 표현했습니다. 유럽의 반짝이는 태양과 탐스러운 꽃은 유럽 특유의 회벽과 어우러져 평화롭고 따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Henri Martin, The Wisteria

 
 

일본에서 등나무를 만난 마리안 노스(Marianne North) 1830~1890

저는 그녀를 '식물 탐험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생물학자이자 식물예술가 '마리안 노스(Marianne North) 1830~1890'도 등나무를 그림으로 담았는데, 그녀는 여행 중 발견한 식물들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으며, 1875년에 시작된 그녀의 세계여행의 발자국에는 일본도 있었습니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탐스럽게 열린 등나무를 표현하였고, 그림에 표현된 품종은 아마도 Wisteria floribunda DC. 가 아닐까 싶습니다. 

Marianne North, Distant View of Mount Fujiyama, Japan, and Wistaria, 1876

 
이 멋진 여성의 탐험과 기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앞선 포스팅을 참고 바랍니다.
2024.04.13 - [예술가의 공간] - 경이로운 탐험과 기록의 역사 - 여행가이자 화가, 식물학자인 '마리안 노스(Marianne North)'

 

경이로운 탐험과 기록의 역사 - 여행가이자 화가, 식물학자인 '마리안 노스(Marianne North)'

앞서 극적인 공간을 연출하는 - 호주아카시아, 극락조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두 식물 모두 시각적으로 독특하고 주목성 있는 식재인데요. 두 소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공통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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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등나무의 역사를 반영하듯 원시적인 신비의 표현 - 요시다 토시(吉田 遠志, Toshi Yoshida) 1911~1995

일본의 판화가이자 화가인 요시다 토시(吉田 遠志, Toshi Yoshida) 1911~1995는 아버지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그의 그림에는 등나무와 일본의 가옥들이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 덩굴성 식물인 등나무를 당시 일본에서는 벽이나 지지대에 올리지 않고 재배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면에 얽히고 설켜 자란 고목 '등나무'는 좀 더 신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1. Toshi Yoshida, Half Moon Bridge, 1941 / 2. Toshi Yoshida, Wistaria at Ushijima, 1953

 
 

등나무의 아르누보적 표현 -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  1943~1933

수선화 이야기를 하며 한번 언급한 적 있는 작가입니다. 스테인글라스 작업으로 알려진 장식 예술가이며, 미국 출신인 작가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 1943~1933는 '등나무'를 표현주제로 삼기도 했는데요. 덩굴성의 가지는 아르누보(Art Nouveau)적 표현양식을 가진 그의 작품에 좋은 요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르누보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유기적인 형태와 곡선이 등장하며, 꽃과 식물을 세밀하고 정교한 디테일로서 묘사함으로써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던 1890~1910년대의 예술운동입니다. 또한 하수형으로 자라는 꽃의 화형과 등나무 꽃에 매달린 수많은 꽃잎 또한 각각의 유리조각으로 표현되며 스테인그라스작품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탠드의 기둥 또한 등나무의 나무기둥과 뿌리를 형상화했네요. 멋진 작품입니다. 

Louis Comfort Tiffany, Wisteria Table Lamp, 1902

 
수선화를 표현한 그의 작품 이야기는 앞선 포스팅을 참고 바랍니다.
2024.04.14 - [극적인 공간을 만드는 디테일 s/식물] - 우아한 리듬과 기품으로 수세기 동안 봄을 열어온 부활의 구근 꽃 '수선화'

 

우아한 리듬과 기품으로 수세기 동안 봄을 열어온 부활의 구근 꽃 '수선화'

4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수선화축제가 한창입니다. 수선화, 튤립, 아네모네... 봄을 맞이하는 구근들은 벚나무, 매화와 함께 추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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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역사와 함께해 온 '등나무'는 꽃잎뭉치가 아래로 탐스럽게 떨어지는 형태와 더불어 화가들의 그림에도 매우 풍성하고 탐스럽게 묘사됩니다. 보라색으로 가득한 하늘과 벽면은 따뜻하고 로맨틱합니다. 또한 서로 뒤엉켜 자라는 굵은 가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특히 성장이 빠른 등나무의 덩굴과 꽃은 벽면의 많은 면을 덮어 건물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따뜻한 햇살과 온도로 온몸으로 자연을 만끽하기 좋은 계절, 그 시기를 더욱 풍요와 향기로 채우는 '등나무'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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