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환경이 생육하기에 좋은 터전이 되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우선 구근식물인데요... 토양에 돌이 많아 배수가 용이하며 춥지만 땅이 잘 얼지 않는 겨울의 온도는 구근이 썩지 않고 땅속에 잘 있다가 이듬해 꽃을 피우기 좋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제주의 토착식물인 '제주 수선화'가 존재하며, 마늘, 양파, 무, 당근과 같은 뿌리 식물이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농산물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제주의 품종을 비롯한 수선화에 관한 이야기를 앞서 나눈 바가 있으니,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아래 페이지를 참고 바랍니다.
2024.04.14 - [극적인 공간을 만드는 디테일s/식물] - 우아한 리듬과 기품으로 수세기 동안 봄을 열어온 부활의 구근 꽃 '수선화'
우아한 리듬과 기품으로 수세기 동안 봄을 열어온 부활의 구근 꽃 '수선화'
4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수선화축제가 한창입니다. 수선화, 튤립, 아네모네... 봄을 맞이하는 구근들은 벚나무, 매화와 함께 추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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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근식물뿐 아니라, 뜨거운 태양과 따뜻한 날씨, 배수가 잘되는 토양은 선인장, 다육식물에게도 적합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제주 한림에 백년초군락이 형성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겁니다. 하지만, 습기 찬 제주의 장마철,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추운 겨울이 계속되었을 경우 식물이 고사하는 일도 드물게 발생하기는 합니다.
다육식물 중 용설란, 유카와 같은 용설란아과 식물은 제주의 정원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 시각적 포인트를 만들어 주목을 끌며, 공간을 이국적으로 만드는 좋은 소재라 생각합니다. 특히 용설란은 괴상하지만 멋지고 당당한 느낌을 자아내는 독특한 시각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식물입니다. 또한 그 꽃은 너무나 화려하고 매혹적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용설란에 대해 분석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용설란( 龍舌蘭, 학명: Agave)
용의 혀 모양을 한 난초, 조금은 기이한 모양을 한 용설란의 형태를 잘 표현한 한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스파라거스목(Asparagales) 아스파라거스과(Asparagaceae) 용설란아과(Agavoideae) 용설란속(Agave) 식물로 멕시코와 같은 아메리카대륙의 건조한 지역을 원산지로 하고 있습니다. 다육질의 잎을 가진 건생식물이며, 성숙하여 꽃이 피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다년생 식물입니다. 몇 개의 종은 여러 번 꽃을 피울 수 있는 반면, 대부분의 용설란 종은 한 번만 꽃을 피우고 죽기 때문에 단엽로제트(Rosette)라 구분되기도 합니다. 대부분 용설란종은 성장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아가베(Agave)는 고대 그리스어 αγαυή agauê 에서 유래하였으며, '저명하고 고귀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용설란의 많은 품종은 매우 높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데, 그 꽃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가베(Agave)는 멕시코 지역의 아즈텍문명과도 관련이 있는 역사 깊은 식물입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매우 훌륭하지만, 조경소재로 사용하기에 아쉬운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날카로운 가시입니다. 인신공양과 식인을 하기도 했던 아즈텍(Aztecs) 제국에서는 인신공양의식 중 피를 흘리기 위한 도구로서 용설란 가시를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역할이 있었습니다. 아가베 잎의 거칠고 강한 조직은 실과 끈이 되고, 잎사귀 끝의 가시는 핀과 바늘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뿌리는 적절한 조리를 통해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아즈텍인들에게 용설란은 필수적인 식물로 존재하였습니다.
아즈텍 문명의 전설에도 용설란이 등장합니다. 마야우엘(Mayahuel)이라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뱀신이자 용신인 케찰코아틀(Quetzalcoatl)과 함께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 이유는 태초의 인간생활에는 쾌락과 기쁨이 없었는데, 신들은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게 만들 무언가가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람들을 취하게 만들 음료수를 만들자며 커다란 나무의 가지가 됩니다. 별의 악령들인 치치미틀(Tzitzimitle)은 그것에 화가 나 마야우엘을 찾기 시작했으며, 그녀의 나뭇가지를 발견하고는 쪼개고 갈기갈기 찢은 후 삼켰다고 합니다.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은 그녀의 죽음에 큰 슬픔을 느끼며 그녀의 뼈를 모아 땅에 묻었고, 그곳에서 피어오른 것이 '용설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멕시코 전통주이며, 아즈텍 문명의 술인 '풀케(Pulque)'는 이 용설란 수액을 추출하여 발효시킨 술입니다.
또한 아가베로 만드는 다른 술은 메스깔(Mezcal)과 데킬라(Tequila)가 있으며, 당분이 높은 아가베는 '아가베 시럽'의 원료가 되기도 합니다.
블루아가베 ( Agave azul , Agave tequilana, Agave tequiliana Weber) 품종
그리고 <메스깔(Mezcal), 데킬라(Tequila)>
메스깔은 남부의 ‘와하까(Oaxaca)’ 지방을 비롯한 허용된 9개주 지역에서만 생산된 술을 일컫으며 최소 24가지의 아가베를 원료하는 술이라고 합니다. 또한 특별한 맛을 내기위해 술병 안에 선인장 애벌레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적이지요. 데킬라는 아가베의 뿌리를 증류하여 만드는데, 할리스코(Jalisco)와 과나후아토(Guanajuato)주, 나야리트(Nayarit)주, 미초야칸(Michoacan)주, 타마울리파스(Tamaulipas)주에서 만들어지는 것만 '데킬라'라고 불리며, 블루 아가베( Agave azul , Agave tequilana)라고 불리는 Agave tequiliana Weber 한 종류의 아가베만 허용된다고 합니다. |
아가베 포크로이드(Agave fourcroydes) 품종
천연 섬유질로서 기능하는 용설란의 대표적 품종은 아가베 포크로이드(Agave fourcroydes)입니다. 이 품종은 헤네켄(henequén)이라는 실을 생산하는데, 멕시코 남동부의 유카탄반도(Península de Yucatán)에서 발견되는 용설란으로 마야문명 때부터 끈과 밧줄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되던 중요한 식물이었습니다.
이 품종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일제의 지배하에 있던 1905년, 한국인 약 1000명은 한국을 떠나 낙원의 땅이라 여겼던 멕시코로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곧 하인으로 팔려갔으며, 혹독한 환경의 용설란 농장에서 수확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황색 모래가 눈앞을 가리는 먼지와 무더위, 가시에 찔리면 살이 썩어 들어가는 농장환경뿐 아니라 농장관리인으로부터의 학대도 이어졌습니다. 고된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몇몇은 탈출하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은 총으로 살해되거나 혹독한 고문과 희롱을 당했다고 해요. 이 용설란 품종 '헤네켄'을 한국인들은 '애니깡'이라 알아들어 그렇게 불렀고, 이 이야기는 1996년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 평점
- 5.7 (1997.12.13 개봉)
- 감독
- 김호선
- 출연
- 장미희, 임성민, 김성수, 김청, 노영국, 이종만, 한태일, 주호성, 박광진, 홍정욱, 홍윤정, 박예숙, 장정은, 김윤형, 이한위, 홍성덕, 이제락, 전해룡, 김문선, 김동혁, 정현수, 최정, 고정일, 김은혜, 김민경, 진봉진, 신정원, 정길묵, 이종서, 김민경
이 품종은 또한 멕시코 전통 알코올음료인 리코르 델 헤네켄(licor del henequén)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된다고 합니다.
다양한 아가베(Agave) 품종들
Agave 속은 1753년 1753년 스웨덴의 생물학자이자 의사인 칼 린네(Carl Linnaeus)에 의해 처음 4종으로 명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러 분석을 통해 분류체계가 변경되었고, 용설란속(Agave) 식물들은 분류학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고민은 종간의 잡종 용이성과 형태학적 변이 등의 이유로 인한 것이며, 전통적인 용설란 속은 약 166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96년 이후 만프레다(Manfreda)속, 폴리안테스(Polianthes)속, 프로크니안테스(Prochnyanthes)속을 아가베(Agave)속과 결합하여 약 252종을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유카(Yucca), 헤스페로유카(Hesperoyucca), 헤스페랄로에(Hesperaloe) 또한 아가베(Agave)속 식물로 형태와 생육환경이 유사합니다.

프리다칼로(Frida Kahlo de Rivera)와 용설란
멕시코를 원산으로 하는 용설란은 멕시코의 대표적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칼로(Frida Kahlo de Rivera) 1907~1954'가 태어나고 세상을 떠난 그녀의 집이나 작업실 '카사아술(Casa Azul)'의 정원에서도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용설란뿐 아니라 같은 아가베(Agave)속 식물인 유카 또한 정원 곳곳을 장식하며 분위기를 더합니다.
토속문화와 민족예술에 뿌리를 둔 프리다칼로는 정원을 가꾸면서 지역의 토착식물종을 수집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수집하고 애정으로 가꾼 식물은 일상 속 물건, 사람과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종종 응석을 부리기도 한 그의 남편 디에고를 두고 프리다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 그중에서도 나는 - 항상 갓 태어난 아기처럼 그를 품에 안고 싶어 합니다." 프리다칼로의 품에 안긴 디에고의 손에는 불처럼 보이는 오렌지색 용설란이 들려있습니다. 이는 디에고의 성기를 상징할 수도 있고, 멕시코 땅에 뿌리를 둔 그의 천재성을 상징할 수도 있다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디에고를 아기처럼 안고 가슴에서는 모유가 흐르고 있는 작품 속 그녀의 표현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프리다칼로의 아픔을 이야기합니다. 유카, 선인장 등 가시 돋친 그녀의 정원 속 식물이 그들의 주변을 애워쌈으로서 그 마음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멕시코 토착식물인 용설란과 지역의 정체성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그녀 간의 관계성은 1937년 프리다칼로를 모델로 하여 촬영된 잡지사진을 통해서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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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칼로의 훌륭한 작품은 지금까지 매우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현대의 작가들에게 모티브가 되기도 합니다. 산 안토니오 보타니컬 가든(San Antonio Botanical Garden)에 설치된 그녀를 표현한 작품이 있습니다. 작품 뒤에는 선인장과 용설란이 식재되어 있습니다. 그녀와 용설란이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부분입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는 극락조화와 목련도 등장하는데,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앞서 다룬 바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상세히 기술되어 있으니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페이지를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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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화가인 HA 브렌데킬데( Hans Andersen Brendekilde) 1857~1942의 유화는 농장이 있는 마을과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 많습니다. '대형 용설란이 있는 이탈리아 수도원 정원'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회벽과 테라코타 지붕으로 구성된 따뜻한 분위기의 건물 앞에 용설란과 유카가 식재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용설란이 건물 앞 그림의 중앙에 위치함으로써 가장 먼저 시설을 이끕니다. 건물 뒤 배경으로 높은 향나무와 파란색 하늘이 이탈리아 시골마을의 목가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을 완성해 줍니다.
드미트리 질린스키(Dmitri Zhilinsky)가 그린 녹지경관 속 용설란
러시아 화가인 드미트리 질린스키(Dmitri Zhilinsky) 1927~2015의 작품에는 용설란과 선인장이 심겨 있는 녹지경관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공원으로 보이는 배경에 심긴 용설란을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정원을 주제로 한 그의 그림이 많지 않은 것과 주로 눈에 보이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의 작품스타일을 보았을 때, 용설란은 당시 그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온 소재이지 않았을까... 유추해 봅니다.
타히르 살라호프(Tahir Teymur oğlu Salahov)의 모던한 분위기 속 용설란
소련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화가인 타히르 살라호프(Tahir Teymur oğlu Salahov) 1928~2021는 한 여성의 뒷모습을 그렸는데, 여성 옆에는 블록으로 만들어진 화단에 블루그린 컬러의 대형 용설란이 식재되어 있습니다. 크기가 크고, 독특한 형태미를 가진 용설란은 단독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블루 용설란은 회색과 파란색 계열의 약간은 차가운 톤으로 표현된 그림 속에서 조화를 더합니다.
용설란의 시원한 수형과 컬러는 이렇게 모던한 스타일의 그림과 건물과 조화를 이룸으로서 현대의 건축물에 도입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단순하고 깔끔하며 무채색의 공간에 도입된 거대하고 힘이 느껴지는 용설란은 공간에 웅장한 분위기와 활력, 특별함을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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