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수선화축제가 한창입니다. 수선화, 튤립, 아네모네... 봄을 맞이하는 구근들은 벚나무, 매화와 함께 추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반가운 식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수선화'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수선화( 水仙花, 영명: Daffodil / 학명: Narcissus)
수선화(水仙花)는 외떡잎식물강(Monocotyledoneae) 백합목(Liliales) 아마릴리스과(Amaryllidaceae) Narcissus속에 속하며 크기는 10~50cm에 달하는 다년생 식물입니다. 알뿌리 식물로 동아시아와 지중해부근에서 자생하고 있습니다.
수선화는 고대문명부터 의학적, 식물학적으로 잘 알려져왔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기술된 것은 스웨덴의 생물학자이자 의사인 칼 린네(Carl Linnaeus)가 당시 알려진 모든 식물의 종, 속, 이를 분류하여 나열한 책 'Species Pantarum(1753)'에서 입니다.
수선화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리스어 νάρκισσος narkissos 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루타르크(Plutarch)에 따르면 narkissos는 식물의 마취성 때문에 narkē "무감각" 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네덜란드의 언어학자 '로버트 SP 비스크(Robert Stephen Paul Beekes)'는 그 어원이 명백히 그리스 이전이라 간주하며, 로마의 자연철학자이자 박물학자인 장로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또한 식물의 이름이 꽃의 취하게 하는 향기로 인해( ναρκάΩ narkao , "나는 무감각해집니다")를 따서 명명되었다고 기술한 바 있습니다.
또한 나르시스(Narcissus)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나르키수스(Narcissus)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구애를 귀찮아하며 받아들이지 않던 나르키수스는 사랑이 거절당하는 게 어떤 것인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되는 저주를 받게됩니다. 그 저주로 그는 결국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으며, 이후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그리다가 아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숨을 거둔 자리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수선화'이며, 자신에게 애착을 가진다는 뜻의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말도 이 전설에서 온 것이라고 하네요. 한자로도 수선화(水仙 花)는 물가에 피는 신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유통되는 품종은 그 형태와 크기가 매우 다양한데요, 오래된 역사와 인기로 인해 현재 수천가지의 품종이 육종 되어있다고 합니다.
서양에서의 '수선화(Narcissus)'
수선화는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점점 인기를 얻었고, 수선화 품종 중 나르시시(Narcissi)는 적어도 16세기부터 네덜란드에서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주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중요한 상업용 작물로 유통이 시작되었는데요. 영국, 네덜란드, 미국에서 품종개량이 많이 이루어졌으며, 개인 및 공공정원의 관상용 소재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과거에는 화환의 소재로도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 웨일즈(Wales)의 국화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품는 수선화는 로마 예술에서도 매우 인기 있는 주제였으며, 이탈리아 폼페이(Pompeii)에서만 50개 정도의 벽화에서 관찰된다고 합니다. 꽃의 이름이 그리스 신화에서 직접 유래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꽃과 신화 사이의 이러한 연결은 확고히 서구 문화의 일부가 되어 고전문학과 영문학에 자주 등장합니다. 고전의 시각예술에서도 신화적 이미지로 인해 청년과 함께 수선화가 자주 묘사되었습니다. 죽음과 부활, 꽃과 풍경 속 아름다움의 표현 등으로 현재까지 수선화는 매우 사랑받고 있는 소재입니다.
죽음과 부활의 꽃 '수선화'
기독교에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를 위로하기 위해 처음으로 수선화가 피어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수선화를 사순절 40일과 연관시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의 많은 사람들은 수선화를 Lent 또는 Lenten Lil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부활절 계란에 수선화를 그림 그리기도 하고 계란, 메추리알 같은 알껍질과 함께 수선화를 꽂아 연출하기도 합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9는 고대 그리스신화와 아서왕 전설에 등장하는 여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화가입니다. 그는 신화 속 나르키수스(Narcissus)의 이야기를 유화로 남기기도 했고, 그의 그림 속 정원과 여성의 손에는 수선화 꽃다발이 담겨있는 작품이 여러점 있습니다.
일상의 풍경을 함께 나누어 온 '수선화'
서양 미술사 상 가장 위대한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덤불을 주제로 여러 그림을 남겼는데, 그중 아래 그림에 묘사된 하부의 식물군락은 '수선화'라 유추하고 있습니다.
수선화 한송이와 함께 여성을 묘사한 화가들의 작품도 있습니다.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Michael Freud) 1922~2011는
20세기 최고의 영국 초상화가 중의 한명으로 종종 황량하거나 메마른 느낌으로 인물을 담고는 했는데, 아래 그의 그림은 무표정한 인물과 시들어가는 수선화 한 송이가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존(Augustus Edwin John) 1878~1961의 그림에도 수선화 한송이를 들고 있는 여성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영국 웨일스의 화가로, 1910년 당시에는 프랑스 프로방스(Provence) 마르티그 (Martigues ) 마을에 매력을 느껴 그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림 속 한적한 농촌의 풍경은 그곳이 아니었을까 유추해 봅니다.
명화 속 수선화는 인물화보다 꽃꽂이의 형태로 여러 인테리어 요소들과 함께 담겨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품을 비롯해 주변의 분위기는 전형적인 유럽의 풍경이기도 하고 동양적인 소품과 함께 조화를 이루기도 합니다. 아래는 프랑스로 귀화한 스위스 출신의 화가 '펠릭스 발로통( Félix Édouard Vallotton) 1865~1925'과 스코틀랜드의 화가 '존 헨더슨(John Henderson) 1860~1924'의 작품에 표현된 수선화입니다.
테오도르 팔라니(Theodor Pallady) 1871~1956는 루마니아출신의 화가입니다. 그는 건축물이 담긴 풍경이나 여성, 그리고 여성의 물건이 포함된 우아한 분위기의 정물을 주로 그렸습니다. 건축물과 인테리어에 대한 그의 관심이 그림으로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그의 정물화에는 꽃이 꽂혀있는 화병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수선화를 비롯하여 양귀비, 아네모네, 튤립과 같은 봄의 구근식물이 꽂혀있습니다.
아르누보(Art Nouveau)의 우아한 선율로서 표현된 기품 있는 꽃 '수선화'
장식예술분야의 미국 예술가인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 1843~1933는 주로 스테인글라스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모자이크 작업에는 수선화가 자주 등장합니다.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과 관련 있는 그의 작품 속 수선화는 우아한 운율로서 표현되어 있습니다. 섬세하고 기품 있는 꽃의 모양,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리듬감 있는 형태로서의 생육상 등이 그의 작품의 모티브로서 '수선화'가 적극적으로 활용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유추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수선화(Narcissus)'
수선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였는데, 주로 왕실과 권세가 높은 양반집에 걸리는 [책가도]와 [백물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꽃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책은 선비의 상징이자 전유물로써 책가도는 조선 지배계층의 사상과 정서가 녹아있습니다. 그렇기에 수선화 또한 진달래, 연꽃 등과 마찬가지로 선비의 사상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식물이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방울수선의 일종인 '제주 수선화'가 분포하고 있습니다.
제주로 유배온 추사 김정희가 사랑한 꽃 '수선화'
제주 수선화는 흰색과 노란색이 섞여있는 모양으로, 매우 짙은 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주로 유배온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이 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에 대한 사랑은 보물 제547호 충남 예산의 김정희 종가 유물 중 <추사의 칠언시 ‘수선화(水仙花)’>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번역: 국립중앙박물관(2006), ‘추사 김정희 학예 일치의 경지’ 참조) 그는 수선화를 '신선'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수선화는 인생의 시련기에 추사의 고달픈 마음을 달래준 꽃이었습니다.
날씨는 차가워도 꽃봉오리 둥글둥글(一點冬心朶朶圓) 그윽하고 담백하여 감상하기 그만이다(品於幽澹冷雋邊) 매화나무 고고해도 뜰 밖 나기 어렵지만(梅高猶未離庭砌) 맑은 물에 핀 수선화 해탈신선 너로구나(淸水眞看解脫仙) |
[출처] 한국일보
제주 유배 당시 추사 김정희가 친구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제주도 수선화에 대해 이야기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육지에서는 흔하지 않으며 선비들에게 귀한 꽃으로 대접받는 수선화가 제주에서는 잡초만도 못하게 취급받음을 안타까워하며 누구에게나 쓰임이 있는 '제자리'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선화는 과연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절강성 이남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에는 촌 동네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서도 이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는데, 화품(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가지에 많게는 10여 송이에 꽃받침이 8~9개, 5~6개에 이릅니다. 그 꽃은 정월 그믐께부터 2월 초에 피어서 3월에 이르러서는 산과 들, 밭두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토착민들은 수선화가 귀한 줄 몰라서 소와 말에게 먹이고 함부로 짓밟아버리며, 또한 수선화가 보리밭에 잡초처럼 많이 나기 때문에 시골의 장정이나 아이들이 보자마자 호미로 파 내어 버리는데, 파내고 파내도 다시 나기 때문에 이를 원수 보듯 하고 있으니, 수선화가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 [출처] 통일뉴스 |
[출처] 통일뉴스
추사 김정희의 제자 허련(1809~1892)은 스승을 화폭에 담았는데, 둥근 창호 옆 오래된 나무 탁자에 매화 분재와 수선화가 놓여있습니다. 수선화는 구근식물임을 알리듯 둥근 뿌리가 드러난 모습이며, 추사 김정희는 그림 속 매화와 수선화를 특별히 사랑했다고 합니다.
또한 19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수선화의 다양한 품종이 수입되었는데, 그 인기가 지나칠 정도에 이르러 1834년 수입금지 품목에 오를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극적인 공간을 만드는 디테일s > 식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대하고 기이하며 날카롭지만 멋진 '공간의 힘 있는 존재감' <용설란> (0) | 2024.04.22 |
---|---|
탐스러운 꽃과 신비로운 덩굴가지로 풍요로운 봄 향기를 전하는 고전적 소재 '등나무' (0) | 2024.04.18 |
극락조화, 파초, 헬리코니아, 바나나까지- 화려한 열대의 풍경을 만드는 식물가족, 친척들 (0) | 2024.04.12 |
다국적 정취를 풍기며, 고혹적인 자태로 봄을 여는 꽃나무 '목련' (2) | 2024.04.07 |
이른 봄의 극적인 아름다움 '호주 아카시아(Golden wattle) (0) | 2024.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