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에 <스누즈>라는 아시아 음식점이 생겼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덕수리는 식당도 이주민도 많지 않은 아주 작고 조용한 마을이었어요. 산방산이 보이는 데다가 사계리 바닷가와도 가까워서 참 살기 좋은 마을이다. 생각했는데... 저만 그런 생각을 한건 아니었나 봐요. 이주민들이 하나 둘 자리 잡고 규모가 큰 주택들이 곳곳에 지어지더니 식당과 카페들이 꽤 들어섰습니다. 맛과 분위기가 좋은 공간들이 많아 요즘 자주 방문하게 되는 마을입니다.
스누즈는 태국, 싱가폴, 중국, 인도 등 다양한 아시아음식을 제주의 지역 농산물과 셰프의 창의로 재해석한 퓨전 요릿집으로 보입니다. 맛본 음식이 모두 맛있고 개성 있어 모든 메뉴를 도전해 보고 싶은 식당입니다.
<SNOOZE>는 '낮에 잠깐 자는 잠'을 이야기합니다. 동남아 지역은 날씨가 더워 낮에는 낮잠을 자거나 잠깐 쉬고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마을마다 새벽까지 북적북적한 나이트마켓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동남아의 분위기를 식당의 이름과 공간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하며 '꽤 괜찮은 이름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여유롭고 느긋한 마음으로 맛있게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도중 'cigarette after sex'의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사랑을 나눈 다음 맛있게 피우는 담배, 그다음 스누즈... 공간과 음악, 음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순간 우리는 '감동'을 합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보이는 제주를 상징하는 현무암 돌담 뒤로 끝쪽 벽면에 'No Spice, No Life' 라는 문구의 네온사인이 있습니다. 그렇죠. 인생은 매울 수밖에요. 매운맛은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식당 주인의 철학이나 가치관, 주인만의 생각이 담긴 재치 있고 재미있는 문장이 있다면 눈에 띄는 네온사인 글씨로 포인트를 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특히 벽돌, 돌, 유럽미장... 등 질감이 있는 벽체에 설치하면 자연소재의 따뜻함과 인공적인 화려한 불빛이 대조를 이루면서 더욱 돋보이는 느낌입니다.
'네온사인'하면 주로 모텔, 클럽, 바, 햄버거가게... 등 상업적인 공간의 간판이 떠오르죠. 그 밖에 네온사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주거공간, 웨딩과 브랜드 행사 등 이벤트를 재미있게 본적도 있습니다. 예술작품도요. 그렇게 네온사인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현재에 활용되기까지 그 과정과 다양한 사례를 조금 탐구해 볼까 합니다.
네온사인의 역사
네온사인은 20세기 초에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조명기술입니다. 1923년 프랑스 파리에 첫번째 상업용 네온사인이 설치되었고, 그 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확산되었는데, 특히 미국의 도시경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1920~1930년대 현대적이고 화려한 도시문화의 상징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으나 1940~50년대부터는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설치와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고, 일부 지역에서는 밝은 빛과 화려한 디자인이 도시의 통일성을 저해하고 광해를 준다는 이유로 규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이르러 네온사인은 독특하고 화려한 빛깔과 디자인으로 상업적 목적 뿐 아니라 예술적 표현수단으로도 활용되며 다시 인기를 얻고 있지요.
레트로, 미드센츄리 모던, 록앤롤, 디스코... 그리고 네온사인
<미국의 소도시> 넓고 곧은 일직선 도로가 펼쳐집니다. 중간중간 식당과 주유소, 모텔에 대형 네온사인 간판들이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호텔과 카지노, 레스토랑이 밀집되어 있고, 네온사인 간판과 조형물로 거리가 화려합니다. '네온사인'을 떠올리면 머리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미국 일부지역의 도시경관, 그리고 과거 1920년대부터 1970년대 까지의 미국의 역사와 문화적인 변화를 표현하는 빈티지 제품과 공간에 있어 네온사인은 상징적인 이미지를 갖습니다. 또한 1950년대의 음악 '록 앤 롤'과 1970년대의 음악 '디스코'는 네온사인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조명 수단이지요. 그 시대 클럽과 음악 공연 장소에서 네온사인을 흔히 볼 수 있었으며, 이는 그 시대의 활기찬 분위기와 독특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대표적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현대에도 그 시대를 그리워하며 테마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상점들이 있습니다. 원색적이며 화려한 컬러, 대비가 강조된 패턴, '레트로',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의 가구들, 올드카... 등으로 꾸민 공간에 네온사인을 연출하여 유쾌하고 활기찬 과거로 여행을 시켜주는 공간이 있음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래피티와 네온사인
네온사인과 그래피티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 거리 또한 많습니다. <그래피티>는 벽면이나 공공공간에 그려지는 '길거리 예술'로 상업지구의 광고나 표지판으로 사용되는 네온사인과 어우러져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있죠.
그래피티는 선명하고 생동감 있는 색채와 그래픽요소를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며, 네온사인은 선명한 발광과 다양한 색상을 활용하여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두 예술 형태가 어우러져 독특하고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냅니다. 이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전달하고, 때로는 반항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으며, 젊은이들 만의 장소로 사람들에게 인식을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파티와 이벤트에서의 네온사인
네온사인은 파티와 이벤트에서 많이 사용되는 장식요소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네온사인을 활용하여 파티 분위기를 더욱 화려하고 특별하게 만들 수 있지요. 파티를 주최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축하메시지, 특정 슬로건이나 키워드 등을 표현하기도 하고, 아이콘이나 그림으로 재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과 같이 배경으로 식물이나 꽃장식이 더해진다면 파티 분위기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음악과 댄스가 있는 파티라면 네온사인은 파티장소를 더욱 밝고 화려하게 비춰 파티를 보다 즐기기 좋은 분위기로 만들어줍니다.
전 세계의 네온사인
서양뿐 아니라 전 세계의 상업지역, 거리, 상점, 레스토랑, 클럽 등에서 네온사인이 적극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의 번화한 도시들에서는 밤에 네온사인 조명이 밝게 비쳐 도시의 야경을 더욱 아름답고 특색 있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현대의 공간과 예술에서의 네온사인
네온사인은 현대 예술에서 독특하고 모던한 연출을 위해 널리 활용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네온사인은 자체적으로 독특하고 밝은 빛을 발산하며,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표현될 수 있어 현대 예술작품에 새로운 시각과 느낌을 더해줍니다.
/ 조명효과
현대의 공간과 예술에서는 네온사인을 사용하여 조명의 효과적인 활용을 시도하고, 작품의 분위기나 감성을 강조하는데 활용됩니다. 네온사인의 빛이 작품의 주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여, 관객에게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상징성과 의미
브랜드의 매장,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브랜드 네임이나 문구, 로고 등을 표현하기도 하며 상징적인 메시지나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지요. 네온사인은 간결하고 직관적인 형태로 표현되며, 이를 통해 작품의 주제나 의도를 강조하고 시각적으로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간적 효과
네온사인은 작품의 배경이나 일부분으로 활용하여 공간의 깊이나 차원을 강조하고, 작품과 관객사이의 상호작용을 도모하기도 합니다. 또한 네온사인의 빛이 공간을 가로지르거나 투영되는 효과를 통해 작품의 동적인 요소를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창의적 표현
네온사인은 그 자체로 창의성이 풍부한 예술적 요소입니다. 현대예술 작품에서는 네온사인을 자유롭게 조합하고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하여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네온사인의 형태, 색상, 크기 등을 조합하여 작품의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예술가의 개성과 아이디어를 표현하는데 활용되지요.
현대공간과 예술은 건축과 예술... 대부분 시각분야에서 모더니즘이 주도하듯 네온사인 또한 과거보다 조금 절제되어있고, 포인트적 요소로서 활용되는 사례가 주로 관찰됩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다시금 적극적으로 네온사인을 도입한 공간을 만나게 되었어요. 얼마 전 영화 <발레리나>를 보았는데, 주인공 친구인 '민희'의 몽환적이고 소녀스러운 방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민희의 네온사인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가 본 네온사인에서 참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오랜만에 밝고 화려하며 생동감 있는 이미지들을 마주하여 기분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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