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공간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의 집과 정원에 대하여

magicalelf 2024. 3. 1.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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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정원, 건축과 인테리어, 그림과 조형예술...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일하고 공부하는 분야입니다. 

그런 저에게 '공간탐닉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은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수많은 생각과 아이디어, 논리, 감정과 단어들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몇 년 전부터 예술에서 시작된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대량생산을 통한 산업화를 거치며 '디자인'이란 분야가 자리 잡혔고, 다양한 디자인 결과물이 건축과 공간 요소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생산되고 쉽게 소비되며, 또 쉽게 버려지는 시대가 되어 버린 요즘, 어쩌면 '디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직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과 단어들을 적당한 글로 정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시간이 꽤 걸릴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필요한 만큼 직접 생산하여 소비하던 '예술과 공예'가 공간을 차지하던 시대에 대한 동경과 회귀에 대한 마음이 자리 잡아 저의 공간은 '가능한 한 자급자족'의 원칙 속에 꾸려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만족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과 공예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경하는 과거 시대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공간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카테고리를 추가하게 되었어요. 예술가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술가의 <공간>은 작업을 위한 적정한 조도, 정신집중을 돕는 작업환경 등을 위한 공간의 기능적 장치도 있겠지만 그들의 지위,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제적인 상황이 뒷받침되는 예술가에게만 허락되는 호화로움으로 치장된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생각을 그림, 조형 등 작품으로 표현하듯 공간에도 그들의 정서가 담겨 뚜렷한 그들만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만난 장소도 있고, 책과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정보를 취합하여 정리한 장소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고, 동경하는 전 세계의 작가들의 공간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예술가들의 공간은 화가이자 정원사 '클로드 모네'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어요. 프랑스의 시골마을 '지베르니' 그리고 '아르장퇴유'라는 지역에 모네의 집과 정원이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아직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고, 그가 애정을 담아 조성하고 관리하는 정원은 그림으로도 표현되어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클로드 모네 (Oscar-Claude Monet) 1840~1926

클로드모네는 프랑스의 대표적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화가로 손꼽히는 인물이죠. 대상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전통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자연의 빛과 색채를 중시하며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두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대상의 색과 형태를 포착하여 그리는 인상주의로 당대 미술계의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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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아르장퇴유(Argenteuil)에서의 삶

모네는 예술적 비전을 실행에 옮길만한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이주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합니다. 아르장퇴유는 도시와 시골 중간에 위치한 조용한 은신처이자 파리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모네에게 적절한 타협안이었고, 그가 얻은 집은 기차역과 센 강에서 가까웠다고 해요. 1872년도 초 가족과 함께 새 집에 정착하자 곧 아름다운 봄이 찾아왔고, 꽃이 만개한 정원과 이를 둘러싼 과수원 덕분에 집 밖으로 나가도 예술적 영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아르장퇴유에서 그린 그림으로는 <정원>, <맑은 날의 라일락>, <책 읽는 여인>, <흐린 날의 라일락>, <정원의 여인들> 등이 있습니다. 

특히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정원>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은 현관 앞 바로 앞 풍경을 그린 작품입니다. 아들 장이 정원에서 놀고 아내 카미유는 문밖을 내다보는 상황을 묘사했습니다. 정원 가장자리를 둘러싼 생생한 붉은 꽃과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위로 쏟아지는 밝은 여름태양을 표현하였고, 가족과 함께하며 느끼는 만족감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집 The Artist's House at Argenteuil, 1873년, 시카고 미술관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정원>이라는 작품은 짙은 빨강부터 은은한 노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채의 꽃이 활짝 핀 풍경으로 차분한 색의 나뭇잎과 대조를 이룹니다. 실제로는 다른 비슷한 집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림으로는 주변 건물들을 배제하여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집이 한적한 곳에 있는 평온한 안식처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르장퇴유의 화가의 정원 The Artist's Garden at Argenteuil, 1873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점심>이라는 작품은 어느 여름날 나무그늘 아래 꽃을 가득 피운 장미덩굴로 둘러싸인 정원에서 점심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한 여인과 아내 카미유가 근처 화단을 거닐고, 아들 장은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테이블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모네는 꼼꼼한 관찰을 통해 다양한 요소를 그림 속에 풍부하게 배치하여 아르장퇴유에서의 사적이고 편안한 삶을 묘사했습니다. 유리잔에는 와인이 남아있고 나뭇가지에 모자가 걸려있으며 벤치에 양산이 놓여있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나무그늘, 환하게 핀 장미화단에서 꽃향기가 풍길 것 같은 공기까지 여름날 오후의 풍경이 아름답게 묘사된 그림입니다.  

점심 The Luncheon, 1873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네가 살았던 '아르장퇴유(Argenteuil)의 집'

 

모네가 살았던 '아르장퇴유(Argenteuil)의 집'은 관광객을 비롯한 모네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개방된 장소로 유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주소: 21 Boulevard Karl Marx, 95100, Argenteuil) 2003년 아르장퇴유시가 매입하여 집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문화유산으로서의 질을 높이고 모네가 사용하던 시기의 특징적인 요소를 보존하기 위해 건물의 전체 구조를 조정했다고 해요. 스위스 샬레의 모습, 매력적인 녹색 창문, 옅은 분홍색 외관이 특징입니다.

 

모네가 살던 아르장퇴유의 집 (출처:https://www.parisladouce.com/)
[출처] https://www.sortiraparis.com/

 

모네의 베퇴유(Vétheuil)에서의 삶

1878년 모네는 베퇴유의 센 강변에 아름다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합니다. 인구증가와 산업화로 인해 아르장퇴유는 그림 같은 시골마을에서 현대적인 교외지역으로 바뀌었지만, 베퇴유는 아직 산업화의 때가 묻지 않은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 시기 모네는 빛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 정원의 오솔길 가장자리에 높이 솟은 해바라기를 여러 번 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림 같은 풍경의 베퇴유에서의 삶은 경제적인 이유로 오래 유지되지 못합니다. 1881년 여름, 가족들과 이사하기 전에 막내아들 미셸과 장 피에스 오슈데가 정원에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소년들은 하얀색 여름옷을 입고 집 앞 꽃으로 둘러싸인 길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림을 통해 모네가 베퇴유에서 누린 즐거움이 일시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쓰라리게 인지하고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1881년 말, 그는 파리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교외 변두리이자 센 강의 왼쪽 강변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 푸아시에 저렴한 집을 얻게 됩니다. 그나마 살만했던 베퇴유를 떠나 환경이 열악한 푸아시로 이사하면서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집과 정원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입니다. 

 

베퇴유의 화가의 정원, 1880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모네의 지베르니(Giverny)에서의 삶

 

1883년도 푸아시 집의 계약이 끝나자 모네는 다시 가족들과 함께 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물을 좋아하던 모네는 이사를 위해 센 강 주변의 작은 마을들을 알아봅니다. 그는 파시쉬르외르에서 지조르 방향으로 기찻길을 따라가다가 아직도 중세적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지베르니를 발견하는데, 이곳은 늪지대와 초원과 숲을 가로질러 자잘한 샛강들이 흐르는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한편, 파리까지 기차로 신속하게 연결이 되는 곳으로, 화가인 그가 거주하기에 최적의 조건들을 구비한 장소였습니다. 

소박한 이층 집과 3000여 평의 땅을 즉시 점유하는 조건으로 임차계약을 맺었는데, 정원과 작은 과수원, 별채 몇 채가 딸려있는 이 부지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소박한 이층 집은 이 지역에서 설계되어 지붕을 타일로 덮었지만, 과들루프 섬에서 지낸 적이 있는 집주인이 외장에 분홍색으로 회칠을 했고 덧문은 회색으로 칠해서 독특한 분위가 있었습니다. 이후 모네는 아르장퇴유의 집을 떠올렸는지 그때처럼 덧문을 초록색으로 칠했습니다. 또한 그림작업의 환경을 위해 이곳저곳을 손질하였는데, 서쪽에 있는 별채를 작업실로 개조했고, 센 강변에 각종 그림도구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지었습니다. 

새 집을 처음 얻었을 때 모네는 집에 딸린 정원을 그리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 정면에는 상자에서 잘라낸 테두리로 가장자리를 두른 화단이 몇 개 있었고, 집의 입구에서 현관까지 그랑 알레(Grand Allée)라고 알려진 산책로가 이어졌으며, 길 양쪽으로는 여러 가지 꽃과 채소들이 심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클로 노르망'으로 불리는 사과밭이 있었고, 집 서쪽에는 여섯 쌍의 보리수나무가 있었으며, 산책로가 시작되는 현관 가까이에는 주목 한쌍이 서있었습니다. 모네는 아이들과 함께 상자 울타리를 제거하고 집 벽 아래쪽을 빙 둘러 꽃을 심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정원에서 일했고, 모네는 땅을 파고 잡초를 뽑았으며 아이들은 저녁에 물을 주곤 했다고 합니다. 또한 초기에는 정원을 예술적으로 탈바꿈하려는 비전을 세우고 정원사를 시간제로 고용, 이들과 함께 정원을 가꾸기도 했습니다. 

 

정원을 꽃으로 채우고 싶은 모네 _시각적 감흥을 위한 정원

1886년 모네는 네덜란드로 2주 동안 여행을 떠났는데, 그림뿐 아니라 구근을 재배하는데 필요한 원예기술을 익히는데도 몰두했습니다. 모네는 농부들이 좋은 구근을 얻기 위해 꽃이 절정으로 활짝 피었을 때 뽑아낸다는 사실을 알아내 지베르니 적용했습니다. 또한 각 품종별 독특한 색조를 강조하기 위해 색상별로 꽃을 모아 화단을 만들었고, 시간이 흐른 뒤 물의 정원에는 빛나는 연못 위로 화사하게 피어난 꽃이 수면을 미끄러지는 듯한 시각적 마법을 구연했습니다. 모네는 점차 지베르니에서 그림소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봄꽃의 과일나무, 습지의 야생아이리스, 튤립들판, 포플러나무나 건초더미 등을 그리며 순간적으로 변하는 미묘한 빛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대기가 변하는 것을 연구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모네는 이런 집과 이토록 아름다운 동네를 어디에도 찾지 못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1890년, 모네는 집주인과 협상하여 저택과 부지를 매입했습니다. 정원이 자기 소유가 되자 모네는 정원을 가꾸는데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아부었습니다. 사과밭에는 사과나무대신 더 장식적인 벚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어가며 꾸준히 나무를 솎아냈습니다. 하지만 모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집을 꽃으로 둘러싸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랑 알레 양 길가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인 아이리스와 수선화, 양귀비, 장미, 모란을 심었습니다. 전통적인 프랑스식 화단은 가장자리가 딱 떨어지는 깔끔하게 구획된 기하학 형태였지만, 모네는 구획을 짓기보다 색과 키가 비슷한 꽃끼리 빽빽하게 심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구분되도록 했습니다. 그림의 구도를 잡듯 정원을 구성했으며, 그의 주된 관심사는 시각적 감흥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모네의 정원 평면 / 조감도 Plan of the gardens of Claude and Alice Monet's house in Giverny (출처:https://www.landscapefirst.com/the-possibly-impressionist-garden-of-claude-monet/)

 

 

 

모네는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자연에 투영하여 정원을 직접 설계하고 가꾸었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초기의 야외 회화처럼 생생하면서도 즉흥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표현했습니다. 

모네는 대문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길가에 들어선 사이프러스와 가문비나무 때문에 꽃들이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나무 꼭대기 부분을 잘라내고 나무줄기 옆에 장미덩굴을 심기도 합니다. 그는 상상 속의 자연을 반영하여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지베르니 정원을 변화시켰고, 마침내 그의 정원이 그의 작품세계를 바꾸어 놓습니다. 

지베르니 정원의 큰 길 Main Path Through the Garden at Giverny 1902년, 빈 벨베데레 오스트리아 갤러리

 

 

 

1893년 모네는 지베르니 집 근처의 땅을 약간 구입합니다. 1200평이 채 안 되는 그 땅에는 초지와 예전에 농장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던 조그만 연못이 있었습니다. 이곳을 경계로 한쪽에는 철로가 다른 쪽에는 그의 정원 울타리와 난간이 놓인 간선도로가 있고 또 한쪽으로는 엡트 강의 작은 지류인 루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모네는 루 강을 가로지르는 단순한 다리 두 개를 짓기 위해 지역 관청에 허가를 신청합니다. 강의 물길을 바꿔서 강물이 연못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게 하는 수로를 건설할 거라는 계획도 함께 설명합니다.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허가를 얻어냈고, 인부들을 고용해 몇 달에 걸쳐 연못공사를 벌였습니다.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 사이에 오래된 포플러와 사시나무를 심었습니다. 연못 위로 우아하게 늘어진 버드나뭇가지는 연못을 둘러싼 울타리 같았고 주변 풍경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주변 화단은 원형이나 곡선으로 디자인되어 강물이 흐르듯 물결모양을 이루었습니다. 일본산 모란과 대나무 등 아시아산 식물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고, 해더, 수국, 철쭉 같은 토종 꽃나무를 심어서 균형감을 더했습니다. 이듬해 연못에 수련이 추가되었고, 모네는 수련을 돌보는 전담 고용사를 고용했습니다. 

1895년에는 집의 현관 앞 산책로와 이어지는 방향으로 연못의 서쪽 가장자리에 조그만 아치형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모네는 물의 정원에서 자신의 작품과 주제 사이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관계를 탐구했습니다. 정원사로서 자신의 작품에 영감을 주는 요소를 다듬었고, 화가로서 자연에서 발견한 무한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연못 근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며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고, 끈기 있는 관찰을 통해 연못의 미묘한 미학을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일본식 다리를 배경으로 풍경화를 연작하며 빛의 변화를 포착하는데 통달했고, 시간과 계절의 시점, 자신의 시점, 수면을 보는 시점 등을 변화시키며 여러 점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1. 일본식 다리와 수련연못 Japanese Footbridge and the Water Lily Pond, 1899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 2. 일본식 다리 The Japanese Footbridge, 1899년,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 3. 수련 연못, 분홍 조화 Water Lily Pond, Symphony in Rose, 1900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모네의 집

모네의 집 (위치: 84 Rue Claude Monet, 27620 Giverny)은 클로 노르망(Clos Normand)라 이름 붙은 정원과 집으로 구성되어 현재까지 잘 유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모네의 집 내부 인테리어는 모네의 집에 담긴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1층에는 거실 겸 아뜰리에, 응접실, 부엌이 있고, 노란색 벽의 식당에서는 모네가 수집한 아름다운 일본 판화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재건된 방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2014년 재건된 모네의 방은 아름다운 꽃무늬 양탄자, 소나무로 제작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1926년 모네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3년간 살며 그가 남긴 발자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모네의 집 외관 (출처:https://www.france.fr/en/normandy/article/fondation-monet-giverny)
[출처] https://www.nouvelle-normandie-tourisme.com/

 

빛과 색에 대한 모네의 감각은 회화에서만 발휘된 것은 아닙니다. 이 이층 집의 인테리어 역시 그의 천부적인 색채감각과 조화로운 센스의 산물입니다. 어두운 색조가 일색이던 당시의 경향과는 정 반대로 지베르니 저택은 대단히 밝고,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세련되었습니다. 건물 외벽은 핑크색으로 칠해져 있고, 초록색으로 칠한 창의 덧문과 문짝이 대비를 이룹니다. 내부는 노랑(다이닝룸), 초록(현관), 파랑(응접실)과 크림색(침실) 등 공간별로 다채롭게 구성되었습니다.  

 

모네의 다이닝룸은 노란색으로 통일감을 주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옅은 노랑으로 칠하고, 가구들의 몰딩이나 문과 창문의 틀, 벽면 등은 강렬한 진노랑으로 도드라지게 처리했습니다. 모네가 공들여 수집한 일본 판화들이 은은한 포인트로 작용합니다. 

노란색 다이닝룸 옆에 붙어있는 부엌은 벽을 청-백타일로 마감했고, 부엌 베란다에서는 정원이 시원하게 내다보입니다. 

[출처] https://fondation-monet.com/
모네의 집 다이닝룸과 부엌 (출처:https://www.academiedesbeauxarts.fr/en/maison-et-jardins-de-claude-monet-giverny)
[출처] https://normandielovers.fr/en/is-giverny-worth-visiting/
[출처] https://fondation-monet.com/
가족거실과 모네의 작업실 (출처:https://www.pariscityvision.com/en/giverny/claude-monet-house)
모네의 작업실 [출처] https://www.franciaturismo.net/

 

 

가족거실은 벽돌색 세라믹 바닥을 제외하고는 블루톤으로 칠해졌습니다. 몰딩은 보다 진한 파란색으로 강조되어 있고요. 가구와 쿠션 등이 같은 톤으로 칠해져 있으며, 다양한 일본식 그림이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모네의 첫 번째 그림 작업실은 거실 내에 있습니다. 1899년부터는 모네의 작업실도 흡연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벽에는 그의 그림(복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네의 작업실은 그가 살아있을 때와 거의 동일하게 재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현관과 모네의 방입니다. 모네의 침실은 작업실/거실 바로 위에 위치하며 어둡고 장식적인 면에서 다소  절제된 분위기지만 정원의 아름다운 전망을 갖추고 있습니다. 창문을 통해 모네는 정원의 꽃을 쉽게 보고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내가 꽃을 그리는 것은 꽃 덕분일 것입니다.” 모든 벽은 그의 인상파 친구들이 그린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침실에는 대형 18세기 원통형 마호가니 책상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현관과 모네의 방 (출처: 출처:https://www.pariscityvision.com/en/giverny/claude-monet-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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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와이프, 엘리스의 침실은 모네의 침실 바로 옆에 있으며, 전용 욕실이 있습니다. 여성을 그린 일본 판화가 침실 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네의 의붓딸인 블랑쉬 오슈데의 침실은 꽃무늬 벽지, 크림색, 장미색 톤으로 꾸며져 자연을 연상시킵니다. 블랑쉬는 1883년부터 1897년까지 그리고 이후 1926년부터 1947년까지 지베르니 저택에서 살았습니다. 또한 화가이기도 한 그녀는 모네의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지베르니 정원의 유지와 보존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엘리스와 블랑쉬 오슈데의 침실 (출처:https://www.pariscityvision.com/en/giverny/claude-monet-house)

 

모네의 정원 _'클로노르망(Clos Normand)'과 '물의 정원'

모네 정원의 두 주요 부분은 ' 클로 노르망(Clos Normand)'과 '물의 정원'입니다. 클로 노르망은 모네의 집에 방문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모네의 집 앞에 위치한 정원입니다. 정원은 여러 개의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으로 배열되어 집으로 가는 통로를 연결합니다. 클로 노르망은 특히 꽃의 다양성으로 유명합니다. 모네는 이곳에 무수히 많은 종류, 모양, 색깔의 꽃을 심었습니다. 튤립, 수선화, 양귀비, 붓꽃, 장미를 비롯한 많은 꽃이 이 정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네는 색상의 조화와 대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식물 선택과 배열에 깊이 신경을 써 조성했습니다. 정원은 봄부터 가을까지 진정한 색채의 폭발을 일으키며, 모네의 가장 유명한 여러 그림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정원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으며, 다양한 각도와 다양한 태양의 빛 아래서 이 정원을 그리는 데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클로 노르망은 모네에게 아름다움과 휴식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적 실험의 장소로서 자연의 빛과 색상의 효과를 탐구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지베르니에 있는 클로드 모네 정원의 또 다른 주요 부분은 '물의 정원' 입니다. 이 정원은 클로 노르망 도로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로 아래의 작은 터널을 통해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물의 정원은 특히 수련 연못으로 유명합니다. 연못 주변에는 대나무, 등나무, 수양버들 등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정원의 가장 상징적인 특징은 의심할 여지없이 등나무로 뒤덮인 일본식 다리로, 이는 그의 많은 작품에 등장합니다.

물의 정원은 보다 자연주의적인 디자인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모네는 이곳에서 회화 예술에 혁명을 일으키고 인상파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그의 유명한 '수련' 시리즈를 그렸습니다. 물의 정원은 빛, 색상 및 분위기를 포착하려고 노력한 모네의 예술적 열망을 반영합니다.

모네의 정원 '클로 노르망(Clos Normand)' 과 물의정원 (출처:https://www.beauxjardinsetpotagers.fr/galerie/857)
[출처] https://fondation-mo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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